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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집-고음질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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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7] 15:49 | 조회 : 2630
 
 
  • 닉네임 : 최윤구(uly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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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 5, 6번 ‘비창’
예브게니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 (1961)

  황제의 식탁에서 태연히 코를 후비는 귀족들에 둘러싸여 있던 러시아의 짜르 표트르는 서구 지향의 개혁을 단행했다(물론 그의 개혁이 귀족들이 코를 후비는 꼴이 보기 싫어서는 아니었겠지만 표트르의 개혁에는 그 같은 행위를 금지했다. 그 외에도 장화를 신고 춤을 추거나 손수건에다 큰소리로 코를 푸는 것, 손으로 입을 훔치거나 손가락을 핥는 것, 음식 앞에서 머리를 긁거나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개혁의 일환으로 1703년 5월 네바강 하구의 한 섬에 뻬뜨로빠블로프스끄 요새가 구축되었고, 그 옆의 강변에 이제 제국의 수도가 될 뻬쩨르부르그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서구를 향해 열린 창으로 계획된 제국의 수도에는 이제 더 이상 코를 파지 않는 귀족들도 살게 되었다. 그러기는 커녕 러시아말로는 쓰지도, 심지어 말하지도 못하지만 프랑스어,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 귀족들은 당대 유럽의 그 어느 사교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교양인들이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에 관한 논의들에는 바로 이 같은 배경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비록 뻬쩨르부르그-레닌그라드-다시 뻬쩨르부르그로 이름이 바뀌지만 언제나 그 체제의 건설자의 이름을 따왔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역사에서 중요한 존재였던 이 도시의 사연이 말이다. 
  건설된 이래 러시아 귀족문화의 구심점 역활을 해왔던 뻬쩨르부르그의 예풍을 혁명이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으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혁명의 수도 모스크바와는 달리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동으로서가 아니라 러시아 예술의 전통을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귀족적인' 스타일이 온존해 있었다.

  므라빈스키는 러시아 황실, 혹은 귀족문화의 전통이 단절되지 않았다는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한 조상을 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므라빈스키의 집안은 음악적으로도 못지 않은 명문이었다. 그의 숙모는 마린스키 오페라 무대에 자주 등장한 소프라노 예브게니아 므라비나로, 그녀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오페라의 초연 무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차이코프스키가 총애한 소프라노였다고 알려져 있다. 여섯 살 때부터 마린스키 극장을 자주 찾던 므라빈스키는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귀족계급의 자녀는 음악원 진학이 금지되는 역차별을 받던 시대였으므로 이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므라빈스키의 음악원 진학은 또 다른 숙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배려 덕분이었다. 어떤 러시아 혁명사든 반드시 한 번쯤은 거명이 되는 바로 그 거물급 혁명가 말이다. 콜론타이가 글라주노프에게 추천장을 써주어 음악원에 진학한 므라빈스키는 니콜라이 말코를 사사했으며 아르투르 니키슈의 제자이기도 한 알렉산드르 가우크에게도 배웠다. 

  1931년 여름 처음으로 레닌그라드 필을 지휘한 므라빈스키는 38년에 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 이후 타계하는 1988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이 자리를 고수하게 된다. 

  위에 적은 경력에서 볼 수 있듯, 므라빈스키는 또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탄생시킨 첫 세대의 예술가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면성을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의 예술을 해독하는 작업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숱한 찬미와 분석이 행해졌던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의 이 음반에 대해 보잘 것 없는 비평을 덧붙일 생각이 없다. 다만 '서구적인 것과 아시아적인 것의 혼합'이라고 일컬어지는 러시아라는 나라의 예술을 대표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음반이 한쪽의 성격만 강조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귀 밝은 이들에게서 프리츠 라이너나 조지 쉘, 심지어는 예풍(藝風) 뿐만 아니라 완성도에서까지도 위대한 토스카니니와 비견되는 므라빈스키의 차이코프스키. 러시아적인 애수보다는 순음악적인 품격이 돋보인다는 평을 이끌어낸 이 음반은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은 신화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황소울음 같은' 굵은 목관과 울부짖는 금관, 억세고 거친 현이 빚어내는 처절한 박력-같은 표현으로 이 음반을 설명하는 이런 해석과 음향의 원인으로 꽤나 다양한 소재를 들고 나왔는데 개중에는 러시아의 혹독한 기후조건이 악기의 제조와 주법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상천외한 것도 있었다. 

물론 클래식 음악 뿐만 아니라 음반 산업사 전체에 걸쳐서 기념비적인 이 음반은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의 첫 번째 서구 순회공연이 있었던 1960년 4번은 런던, 5,6번은 빈에서 녹음되었으므로 기후와 지리적 특성에 기댄 이런 설명은 에누리 없는 농담일 뿐이다. 

  이들의 차이코프스키에서 두드러지는 야성적인 면모와 러시아적 애수를 강조하는 이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전설적인 음반에는 분명 서구 지휘자와 악단에 의한 연주에는 없는 요소가 있으니까. 아마도 그 설명하기 힘든 독특함은 이런 종류의 것일 게다.

  소련 사람의 삶에 있는 이 요소들을 무시하면 독소 전쟁사는 이해할 수 없다. 소련의 승리를 물질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전쟁의 일상적인 실제 경험이 현세적이거나 진부하거나 야만적이라고 해도, 러시아의 '얼'이나 '넋'이라는 어떤 관념을 단순한 감상으로 간주하기에는 보통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독소 전쟁사를 쓰기 어렵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리처드 오버리) 중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대조국 전쟁'이라고 부르는 2차 세계대전 중 동부전선의 싸움을 다룬 리처드 오버리의 저서에서 따온 이 설명은 그대로 러시아 연주자들이 특히 자국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발휘하는 아우라의 광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책임은 어쩌면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연주를 해냄으로써 그 연주를 설명해야만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마저 패닉 상태로 빠뜨려버린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들의 연주를 직접 듣고서는 '러시아인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연주'라는 말을 되뇜으로써 거의 모든 외래 문화를 일본을 통해서 들여오는 한국의 애호가들을 헛갈리게 만든 일본 평론가들의 탓일지도.

  어쨌든 처음에는 과장으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의 차이코프스키 후기 교향곡집에에서 러시아의 '얼'이나 '넋'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강조는 날이 갈수록 드높아져서 마침내는 그 본질이 되었다.

  그 결과는? 아마도 당신은(특히 광대무변한 네트웍 세상에서)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과 돈 코사크 합창단이 전혀 변별성 없이 다루어지는 난폭한 취급을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비록 그 시작은 미약했을지도 모를 과장이 더없이 창대해진 것이다. 이제는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 필을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고음질 음원은 교향곡 5번을 CD 두 장에 나누어 수록해 두고두고 지탄을 받았던 약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음질상의 이점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압도적인 관악기군에 가려져 있던 현의 존재감이 역대 최고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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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윤]
     
    2016-08-27 22:59:05
    전에 엄청난 시스템에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4번의 트럼팻은 정말 레이져쏘듯 쏘더군요...왜 이 시절의 금관 소리가 잘 안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게 실감났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음향적 특징 말고 말씀하신 비정상적일 정도의 연주로 듣는 사람이 압도되어 버린다는 점에서도 이 음반이 지닌 '괴소문'은 과장이 아닌게 되어 버리는 재미있는 상황이...ㅎㅎ
    간혹 논리나 합리성으로 따지고 드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스타일이 아닌 때로는 일단 규모있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러시아 다움도 많이 느껴지긴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