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때를 기억해 보면 일본의
유명 하이파이 매거진에 자주 소개되던 스피커가 있었다. 북쉘프였으며 가격은 무척 합리적이었다. 그 스피커는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모니터 스피커로 크게 활약하던 스피커이다. 얼마나
유명한 스피커였던지 나도 소유한 적이 있다.
이 스피커는 야마하가 발매했던 NS-10M 이다.
야마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회사이다. 그리고 기술력이 돋보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룹 내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는 제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랜드 피아노부터 하이파이 기기, 모터 바이크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야마하에서 NS-5000이라는 새로운 스피커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개념의 스피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실물과 처음으로 접했을 땐 그 생김새가 야마하라는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그대로 묻어있는 디자인이었다.
3웨이 구조로 야마하를 아는 누구라도 이 스피커가 야마하가 만들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전통적인 디자인이다. 아는 이들도 많겠지만 2000년도엔
야마하가 급격히 정체성을 바꾼 디자인을 내세우기도 했었다. 이해가 힘들었다. 지금 나는 지금의 NS-5000 디자인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우리나라에서 하이엔드 오디오는 시장이 크게 양분화 되어있다. 미국산
제품과 유럽산 제품들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 작지만 호주 메이커의 제품들도 수입되고 있고 일본 제품들도
수입되고 있다.
<NS-5000의 내부 사진, 다른 스피커와 다르게 흡음을 위한 울의 사용을 최소화 하였다>
일본의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의 기술력은 그야 말로 인정 못하기 쉽지 않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어떤 기술이 소개가 되면 재빨리 개량화해 자신들의 것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력도 있고
또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여기에 듣는 능력과 소리의 튜닝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오타쿠들이 많은 나라임을 체감할 수 있다. 다만, 소리의
튜닝 방향성이 미국이나 유럽 메이커들처럼 확고한 존재감이 없다.
일본 하이엔드 메이커들의 제품을 심도 있게 살피면 기술력은 있으나 잠재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꽃을 피우는 느낌이다. 마치 유럽 자동차와 일본 자동차를 직접 비교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야마하의 NS-5000 만큼은 정말 달랐다. 정말 놀랬던 것은 피아노의 재생음이었다. 마치 야마하가 의도하면
무슨 일이 만들어지는 “Yes we can” 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야마하 스피커에 있어 적어도 피아노 재생만큼은 확실한 레퍼런스가 존재한다. 바로
그들이 정점에 올려 세운 그들의 피아노 음색이다.
이런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NS-5000에 배여있다. 마치 잘 숙성된 와인을 맛 보듯. 개인적으로 이 한 가지만으로도
아주 뛰어난 피아노 재생음을 바라는 이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피아노 재생은 무척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저음으로는 20Hz 고역으로는 20kHz 이상의 음이 담겨 있다. 이것은 실질적인 배음을 포함한 주파수 영역으로 피아노 만큼 넓은 대역을 가지고 있는 악기는 드물다.
재생 특성이 좋지 못할 경우 어느 건반 영역이 되었던 옥의 티는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스피커 드라이버 유닛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향 평준화를 이뤘고 최근 드라이버 유닛들은 스파이더 자체에
높은 댐핑력을 가져가기 때문에 이런 옥의 티를 줄이고 있다.
<고역과 중역의 반대음을 감압하기 위한 미로 튜브>
하지만 피아노 음의 분위기와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배음이다. 세상에
모든 스피커는 레코드에 기록된 정보에 의해 진동판이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데, 단지 투명하고 맑고 깨끗하고
번짐 없는 소리에 배음이 은은하게 울려 퍼져 주면 좋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얼티밋 그레이드의 레퍼런스 스피커가 아닌 이상에는 스타인웨이나 파지올리나
뵈젠도르퍼, 야마하의 그랜드 피아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영롱함을 잘 살려내지 못했다.
하지만 NS-5000이 재생하는 피아노 음은 잘 세팅된 하이파이
시스템에서 우리가 여태까지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이러한 분위기를 아주 잘 재현해 낸다.
이를 테면 극한의 해상력을 가지고 있는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피아노 연주를 재생해 보면 진짜 그랜드 피아노와
레코드 재생 중 무엇이 더 훌륭한지 판단할 수 없는 착각에 빠진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진짜 그랜드
피아노 보다 더 좋은 음을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피아노 연주가 서툴러 같은 곡을 형편없이 연주해 보거나 그렇지 않아도 건반 몇 개 두들겨
보면 실제 피아노 음과 상당한 격차를 느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 다음부터 황홀하다 생각했던 레퍼런스
시스템에서도 피아노 재생음이 뭉뚝하게 느껴진다.
무척 황홀하다 느껴졌던 배음도 굉장히 시들해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피아노 재생이 가장 어렵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하지만 NS-5000은 해상력이라는 부분에서 리얼 피아노 재생에
레퍼런스 스피커들 만큼은 다가서지 못하지만 그 분위기 재현 만큼은 압도한다. 이런 성능이 나로 하여금
NS-5000으로 음악을 듣는 내내 무언가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렇다면 야마하는 NS-5000에서 이러한 음을 재생해 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깃들인 걸까? NS-5000은 기존의 야마하 스피커의 많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자이론 진동판이다.
<저음부 반대음 에너지를 감압하기 위한 공명관>
자이론은 일본에 동양방이 개발한 합성섬유이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자이론이 가끔 베릴륨과 비교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 특성만을
비교할 수 있는데 재생 주파수의 평탄한 특성에서 자이론이 베릴륨 보다 낫다.
자이론은 PBO 계열의 섬유재이다. 자이론은 이를 개량해 붙여진 상품명으로 강도가 아주 뛰어나고 탄성율이 무척 좋으며 내열성도 무척 좋다. 이런 소재의 특징은 단가가 비싸다는 것과 이것을 스피커 진동판으로 성형하기 위해서는 또 많은 비용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이론 특성 자체가 성형하기 나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스피커의 진동판 기술은 현재 진행형이다. 진동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심도 있게 들여다 보면 작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진동판은
트랜스듀싱이 일어나는 마지막 단계에 서 있다.
전기 에너지를 진동 에너지로 바꿔 공기를 파동 시키는 부분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교탄성률이다. 자이론은 비교탄성률이 워낙 좋기 때문에 트랜스듀싱 속도가 무척 빠르다. 개인적으로 하이엔드 스피커 드라이버를 개발하는 엔지니어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카본으로 제작된
진동판이 이 속도가 다른 진동판에 비해 더 빠르다는 논문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이론의 이런 특성은 카본과 무척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자이론은 내부손실이 무척 크다. 쉽게 이야기 해 트랜스듀싱에 의해 콘의 진동에너지가 공기를 파동
시키고 난 이후에 잔재하는 에너지의 흡수 능력이 무척 좋다. 이런 에너지를 빨리 감쇄시키기 때문에 연속적인
진폭에서 디스토션이 억제된 피스토닉이 가능하며 내부 흡음재를 비교적 적게 사용하여도 캐비닛 내부에서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음에 의해 진동판이 공진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이론의 가장 큰 특징으론 섬유 한올마다 야마하의 커스텀 스펙에 의해 모넬 합금(앰보르스 모넬이 발명한 니켈과 구리 합금)이 증착 코팅 되어 있다는
점이다. 섬유 직조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좀 더 평탄한 주파수 특성을 얻어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NS-5000은 배플은 1.5mm, 그 외의 면은 1mm 두께로 자사 피아노 도장과 같은 수준에 마감 처리가 이뤄진다>
무엇보다 자이론 진동판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고역/중역/저역을 위한 모든 진동판 소재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위상
특성을 맞추는데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야마하는 NS-5000에 진동판 소재를 원래 통일하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자이론과 완벽한 위상 특성을 나타내는 소재를 찾지
못해 내린 결론일수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야마하는 하이엔드 스피커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한 신기술도 NS-5000에 적용했다. 모든 스피커는
진동판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지만 반대로 작용하면서 반대 방향으로도 같은 음량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이 반대음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이 고안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캐비닛 내부에 많은 울을
사용하여 흡음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수 많은 울은 불필요한 반대음을 소거하는 역할도 하지만
진동판에 아주 불필요한 배압을 일으키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그래서 많은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는 울
없이도 내부 정제파나 통울림을 억제하기 위해 더 나은 특성에 고가의 캐비닛 소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마하는 생각을 바꿨다. 반대음을 캐비닛 소재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독특한 모양새로 디자인한 튜브를 통해 음압의 1차 감압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역 드라이버와 미드레인지 드라이버에 주파수 파장 변화에 따른 생김새와 크기가 약간 다를 뿐 미로 튜브
방식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또한 저역부에는 J 형태로 디자인된 공명관이 사용된다. 불필요한 공진 에너지를 흡수하여 그만큼 캐비닛에 쌓이는 진동 에너지의 부담을 줄이게 되며 그만큼 흡음을 위한
울을 적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야마하 NS-5000을 청음 할 때 이런 기술적인 바탕을 먼저
인지한 이후 듣게 되면 NS-5000의 재생음이 왜 이렇게 달라졌고 어떻게 개선 되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크로스오버 회로에는 문도로프사의 최고급 부품들이 사용되어 재생음의 수준을
더욱 끌어 올리고 있다.
NS-5000이 재생하는 음의 입자감은 무척 독특한 편이다. 음의 입자의 크기가 가늠 될 정도로 이런 특징은 고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것이 무척 담백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특히 드럼셋에서 브러시나 스틱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되는데 바로 이런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탬버린의 징글과 같은 소리 묘사는 마치 소리를 털어내는 듯한 묘한 느낌도 받게 된다.
<NS-5000 청음이 이뤄졌던 GLV 시청실 전경, MSB DAC와 램피제이터, 브라이스턴등
다양한 기기와 매칭할 수 있었다>
중역대 재생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현악기인 첼로의 선율은 밝은 편이다.
현의 놀림이 통울림에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것은 자이론 진동판과 더불어 소리의 1차적인
감압 장치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필연적으로 NS-5000 같은
형태의 캐비닛을 가진 스피커들은 통울림에 의해 마스킹이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NS-5000에선
느끼기 힘들다.
흥미로운 점은 12인치 우퍼이다. NS-5000은 30cm 구경의 우퍼 진동판을 가지고 있으며 능률은
88dB인데 놀랍게도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750Hz와 4.5kHz로 우퍼의 HF 컷이 750Hz
부근까지 도달 한다. 자이론이 무척 가볍기 때문에 30cm
구경에 이르지만 이만큼 빠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무척 두터운 소리결을 가지고 있다. 여태까지 우리고 알고
있던 일본제 스피커와는 다른 음색이 느껴진다. 이것은 저음현이나 드럼,
딥 베이스에서고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 만약, 야마하라는
마크를 떼고 NS-5000을 들었더라면 이것이 야마하 스피커커라 절대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설계는 깊은 저음보단 중저음의 양감에 이득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좀 더 빠른 HF 반응을 이끌어내 결과적으로 NS-5000에서
이룰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를 잡아낸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상당한 딥베이스의 녹음에서는
약간의 통울림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귀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며 순간마다 저음의 해상력 저하가 살짝 느껴지는 수준에서 해결하고 있다.
무엇보다 NS-5000을 위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성격의 앰프를
연결해 들어보았을 때 앰프가 가지고 있는 고유 특성도 잘 나타내 주었다. 앰프나 소스기기의 성향에 따라
광대역의 사운드 스테이지를 만들어 주기도, 사운드 스테이지 폭이 다소 좁아지지만 무대에 떠오르는 악기를
더욱 오밀조밀 진하게 표현해주기도 했다.
디자인에서부터 최종적인 소리의 결과물까지 야마하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스피커임에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리뷰를 위해 NS-5000과 마주하는 시간 내내 호기심과
소유욕을 자극 받을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느낌이었다.
판매처 – GL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