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뛰는 가슴이 진정이 안될 때가 있었다. 1990년대이다. 당시 일본에서 발행되는 하이파이 매거진을 곁에
두며 정신 없이 읽을 때가 기억이 난다. 당시엔 학생이었고 당연히 구입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꿈만 꾸었다. 그 때에 나는 내가 지금의 일을 하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무척 재미있다.
당시엔 하이파이 브랜드 파워가 지금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마크
레빈슨, 크렐, 제프 롤랜드, 와디아, 윌슨 오디오, JBL등의
브랜드 네임은 신뢰의 상징이었다. 내가 하이엔드 오디오를 처음 접할 수 있었던 때는 동네 아저씨의 동생의
시스템, 1994년이었던 것 같다. JBL K2 S9500 스피커와
마크 레빈슨 No31L CDT와 No30L DAC, 그리고
제프롤랜드 모델 9 이었다.
무엇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굉장한
충격이었다. 지금은 그 어떤 하이엔드 오디오를 접해도 그 때의 기억만큼 강렬하지 않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수준을 올리는 계단도 없이 당시 최고의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내 미래를 잠시 보여줬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새로운 차원의 문을
넘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마크 레빈슨과, JBL, 제프
롤랜드는 영원히 내 가슴에 존재할 것 같다. 사실 나는 15년
전에도 제프 롤랜드를 사용한 적이 있다. 모델 8T였다. 우선 디자인과 크기가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전면에 빛이 수직으로 집중되어 맺히는 헤어핀 디자인은 놀라웠다. 더
놀라웠던 것은 전면 패널이 거의 평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이 디자인은 제프 롤랜드씨의
특허로 거의 2년 동안 섀시 가공 업체와 협업을 통해 제품을 실현했다고 한다.
사용되는 가공유의 배합 조건도 다르고 가공 방식도 달랐다. 지난
세월 동안 제프 롤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단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고 지속적으로 발전을 이뤄왔다.
제프 롤랜드를 좋아했던 이유는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우선
음의 스피드가 좋았다. 그들은 클래스 AB를 정말 잘 다뤘던
회사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열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당시 대형 방열판을 적용하고도 그 정도 열이었다면
상당한 온도였으리라 생각한다.
내부를 열어보고 놀랬던 것은 절반 이상이 트랜스포머와 전원부 콘덴서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마크 레빈슨과 달리 회로는 무척 심플했었다. 마크 레빈슨은 회로의
경로가 길어 무척 정교하게 다듬어진 재생음이었지만 제프 롤랜드는 회로 경로가 짧아 왜곡이 적은 생기 있는 재생음이 특징이었다.
<육중한 히트싱크가 돋보인다. 알루미늄 패널을 가공해 만든 것으로 최상급의 품질이다>
그랬던 제프 롤랜드가 깜짝 변신을 거듭했다. 2000년 초로
기억하는데 효율이 무척 좋은 아이스 파워를 들고 나온 것이다. 당시 모델명이 모델 201로 기억하는데 솔리드 알루미늄 섀시에 아이스 파워 모듈을 메커니컬 그라운딩 형식으로 탑재했던 모델이었다.
야심 차게 내놓은 제프 롤랜드의 파워앰프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그렇게 따듯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 모델 501이 발매가 되었고 제프 롤랜드의 클래스
D 파워앰프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는 분위기였다.
사실 신이 났던 것은 다른 앰프 메이커들이었다. 제프 롤랜드가
만들었으니 우리도 비슷한 모듈을 사용해 앰프를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소리의 차이는 컸고
오직 제프 롤랜드만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결정적 차이는 내부 와이어링이나 단자, 그리고 입력부 회로의 차이였다.
신기했던 것은 나는 제프 롤랜드가 다시 클래스 AB 파워앰프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점차 등치를 키우고 바이–앰핑에
대응할 수 있는 4채널 파워앰프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한
동안 조용했다가 625라는 클래스 AB 증폭 방식의 파워앰프를
데뷔시켰다. 물론 모노블럭 버전인 725까지 말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이를 반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무엇보다 상당한
크기의 파워앰프였으나 솔리드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것은 경이로웠다.
그런데 또 의외의 행보를 이어갔다. 2013년 제프 롤랜드 모델
9 시리즈 이후에 레퍼런스라고 할만한 파워앰프가 부재였는데 825와
925 시리즈로 부활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제프
롤랜드씨의 클래스 AB를 기대했지만 놀랍게도 클래스 D 방식이었다. 전원부 분리형 클래스 D 파워앰프였다. 825는 스테레오, 925는 모노블럭으로 데뷔했는데 클래스 D 회로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재생음이었다.
이것이 제프 롤랜드가 21세기에 와서 완성한 재생음인가? 무척 성숙하고 순도가 높은 재생음이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이 내리쬐는 그런 느낌이다. 그는 앰프 제작자이기 이전에 타고난 음악적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이 레퍼런스 파워앰프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제작된 앰프가 바로 데몬(Daemon)이다.
<제프 롤랜드는 전통적으로 입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했다. 데몬 역시도 적용 되었으며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하지만 데몬은 새로운 형태의 인티앰프로 제작 되었다. 이것을
그냥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라고 부른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수퍼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라고 부르기로
했다. 같은 이야기를 작년, 제프 롤랜드를 방문했을 당시
제프 롤랜드의 부사장인 루씨안씨에게 건넸을 때도 같은 설명을 들려주었다.
데몬은 놀라운 출력을 갖추고 있다. 8옴에서 채널당 무려 1,500와트의 출력을 발휘한다. 4옴에선 2,500와트의 출력을 낸다. 정말 엄청난 출력이다. 하지만 이것은 PWM에 의한 클래스 D 증폭 회로로 구현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만으로 대단히 훌륭한 음질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제프 롤랜드씨의 기술력이 아주 잘 드러난다.
모든 아날로그 입력에 대해서 제프 롤랜드의 전통적 기술인 입력 트랜스포머 기술이 적용된다. 이것은 밸런스뿐 아니라 언밸런스 입력에도 해당 된다. 입력 트랜스포머는
일종의 버퍼 효과와 더불어 DC 성분이나 초고역의 디스토션 성분을 통과하지 못하며 일종의 아이솔레이션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러한 장점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메이커에서 입력 트랜스포머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필터링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제프 롤랜드씨는 스웨덴의 룬달사 제품을 커스텀 스펙으로 제작 받아 입력 트랜스포머를 사용해 단점을 크게 억제하고 있다.
제프 롤랜드의 음색은 무척 밝고 생기 있지만 굉장히 깔끔하고 안정적인 밸런스를 갖추고 있다. 이런 재생음의 바탕 중 하나가 제프 롤랜드만의 입력 트랜스포머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데몬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형태의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레이아웃을 보면 회로간의 간섭과 회로 내에서도 부품간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제프
롤랜드씨는 아직까지 핸드 드로잉에 의한 회로 설계를 고집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두고 잘될 때는 아주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와 더불어
데몬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과물로 결심이 작용 되었을까? 데몬은 처음 계획보다 규모가
더욱 커진다. 제프 롤랜드의 레퍼런스급 파워앰프인 모델 825와
925를 제작하면서 얻은 섀시 기술이 데몬에 적용 되었다. 모델
825에 전원부를 제외한 메인 모듈부 보다 다소 작은 크기로 제작 되었지만 수준은 동일하다.
여기에 제프 롤랜드의 최고 기술력이 적용된 DAC 회로가 탑재된다. 참고로 제프 롤랜드씨는 앰프 제작자로 DAC 제작자는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DAC 회로의 절반이 아날로그라는 점을 감안하면
DAC의 완성도를 누구보다 끌어 올릴 수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데몬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형태이지만 수 많은 얼터밋 스피커와 매칭된다>
이에 제프 롤랜드씨는 Aeris DAC을 디자인할 때 함께 작업했던
토마스 홀름씨와 다시 한번 작업을 이루게 된다. 데몬에 사용된 DAC는
단지 메머드급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에 적용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완성도에 크게 집착하지 않을 법 하지만 디지털 필터를 하나 선택하는데도 여러 개의
필터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와 더불어 최종 개발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고 한다.
또한 DAC엔 이상적인 회로 구현과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아이솔레이션을
위해 DAC 회로에 이들 회로에 독립적인 넉넉한 전원 공급을 위한 레귤레이션 전원부까지 탑재하고 있다. 참고로 제프 롤랜드씨는 특정 섹션을 통해 토털 밸런스를 추구하는 회로 디자인에 능한 인물이기도 한데 이번 포인트는
DAC에 비중이 높아 보인다.
6레이어에 로저스 세라믹 PCB를
DAC 회로를 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 가능한 음원 포맷의 폭도 Aeris DAC에 비해 훨씬
넓어졌다. 24비트에 192kHz의 PCM을 처리할 수 있으며 DSD 포맷 역시 재생 가능하다. 수준급의 커스텀 메이드 PC나 플레이어가 있다면 데몬은 그 자체로
수준급의 소스기기까지 대응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과 재생음은 지금까지 앰프와는 완전히 차별화 된 방식으로 구동할 수 있다. 바로 전면 패널 중앙부에 위치한 터치 스크린에 의해서이다. 178mm X 127mm의
대형 컬러 디스플레이에 데몬의 조작을 위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조작을 위한 인터페이스는 정말 직관적이다. 스마트폰과 같이 제공되는
아이콘을 통해 어떤 기능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볼륨 컨트롤도 가능하다. 더불어 거의 모든 기능은
손 끝에 걸려 움직이며 레이턴시가 무척 적다. 이 느낌은 흡사 안드로이드 계통보다 아이폰에 가깝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데몬에 적용된 GUI는 덴마크의 Mjolner와 협력해 개발된 것이다. 추측컨데 만약 제프 롤랜드가
크라이테리온 후속 레퍼런스 프리앰프를 출시 한다면 반드시 이 GUI 조작 시스템이 탑재 되어 발매될
것이다.
왜냐면 이 GUI 개발을 위해 수년의 시간이 소모 되었고 하이엔드
오디오 컴포넌트를 위해서 라기엔 엄청난 개발 비용이 투입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의 제프 롤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데몬엔 0.5dB 단계로 99dB까지 움직이는 볼륨 회로와 부드럽게 움직이는 헤비 노브등이 탑재되어 있으며 헤드폰 출력 단까지 탑재되어
있다. 그리고 옵션으로 HDMI 오디오에 대응할 수 있는
인/아웃 모듈 그리고 MC/MM 포노 모듈까지 선택할 수
있다.
<데몬의 후면, 다양한 디지털 입력과 아날로그 입력이 가능하며 MC/MM 포노 옵션도 제공, 프리-아웃까지 제공한다.
본격적인 시청에 앞서 나는 국내에 수입된 데몬의 언박싱 작업까지 지켜 볼 수 있었다. 사실 국내 청음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프 롤랜드 본사에서 청음 경험이었다. 재생음의 수준은 제프 롤랜드 모델 825나 925을 들을 때 인상과 비슷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제품 스펙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면 클래스 D 증폭
회로를 탑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디스토션이 낮으면서 S/N이 뛰어난 음의 광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몬의 음색은 음에 번짐이 없는 또렷함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 담백한 맛도 갖추고 있는데 단순히 담백하기만 한 다른 메이커의 제품과 비교하자면 퍽퍽함 대신 촉촉한 수분이 스며든 듯한 음색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음색적 조합의 표현은 오직 제프 롤랜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음의 입자감도 작고 곱다. 고역은 화사한 편이지만 뛰어난 S/N에
의해 소란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브러시의 소리를 들어보면 고역의 확산력이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만
금속의 질감 표현 능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음은 1,500와트의 무지막지한 출력이 돋보이지만 양감 보단
빠른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음 저음의 표현에 깊게 내려가지만 조금 경직된 느낌이 있어 이것이
풀리는데 까지 한 주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저역 표현에서도 발군의 해상력을 보여
주었다.
참고로 제프 롤랜드는 예전부터 이런 빠른 응답을 추구해 왔는데 유자 왕과 같이 테크닉을 앞세운 피아니스트의
타건의 반응에서 번짐이 전혀 없고 경쾌한 울림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음악성이 돋보이는 흐름이 좋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수준급의 다이나믹스 표현으로 음에 높은 몰입을 유도한다.
다만 군더더기가 없는 디스토션 프리에 재생음이기 때문에 헤비한 두께감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물론 후자가 정확한 음은 아니지만 취향이 그쪽으로 편향 돼 있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데몬쪽이 보다 정확한 재생음이고 이만큼 디스토션이 억제된 재생음을 구현하기 위해 강력한 섀시에 결합된
메커니컬 그라운딩 디자인이 채용 되었다고 판단된다.
정말 멋진 외관에 흐르는 아름다운 재생음. 데몬은 분명 제프
롤랜드의 상위 라인업에서 크게 활약할 앰프로써 기대된다.
수입원 – (주)로이코
판매원 – AV플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