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피스 파워 앰프 공구 진행을 알리는 게시판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그간의 파워앰프 기행이 별안간 기억의 저편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별 수 없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긴다. 글이란 때로 이렇게 뭔가가 용솟음 쳐서 쓰여지기도 하는 법이니.
그간 나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남다른 데가 있었다. 시작을 스피커로 삼는 데서는 같았지만, 그 스피커를 구동할 파워앰프를 낙점하는 것이 다음 수순인 대부분의 애호가들과는 달리 나는 소스기기를 우선 순위로 뒀기 때문이다. 즉, 소리의 시작과 끝을 먼저 정하고 그 가운데인 앰프를 채워 나가는 식이 내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매칭에서 파워앰프라는 컴포넌트는 내게 스피커를 단순히 ‘구동’시키는 것 이상의 존재였다. 명기라고 할만한 외산 파워앰프도 꽤 써봤지만, 아주 최근까지 사용했던 파워앰프는 지금 공구하고 있는 마스터피스와 족보를 같이 하는, 오딘과 오딘 레볼루션이었다. 두 제품 모두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빈자를 위한’이라는 수식에 꼭 맞는, 가격대를 훌쩍 뛰어넘는 훌륭한 구동력을 자랑하는 파워앰프였다. 그리고 시도해 보는 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프리 앰프에 못지 않게 케이블 류에 정성을 쏟으면 음악성이 몇 배로 향상되는, ‘잠재된 음악성’이 있는 파워앰프이기도 했다.
운영자 최성근 씨와 제작자 박찬호 사장이 튜닝을 위해서라고 굳이 멀리까지 그 무거운 앰프를 들고 왔을 때 내가 걸어본 음악들은 그때까지는 시제품이었던 마스터피스의 구동력이 아니라 음악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르네 카퓌송/카티아나 부니아티쉬빌리가 연주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http://www.groovers.kr/mqs/album/LOT6i4u
발전된 디지털은 마침내 가장 취약점으로 꼽히던 현의 그윽한 질감까지도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무엇보다 소리로 증명하는 음원. 현 세대 가장 영향력 있는 프랑스 바이올리스트인 르네 카퓌송이 요즘 악단에서 가장 핫한 피아니스트의 한 명인 부니아티쉬빌리를 만났다. 그리그와 드보르자크도 수연이지만 역시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스 태생인 만큼 프랑크가 핵심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는데, 카퓌송의 젊고 발랄한 음색과 몽롱하면서도 동시에 명징한 부니아티시빌리의 터치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들의 연주를 마스터피스는 낮은 무게중심과 정숙한 무대를 제공함으로써 수준급의 레코드 연주를 가능케 한다. 실내악에서 반드시 필요한 연주자들간의 긴밀한 대화와 호흡은 파워앰프가 여유 있게 스피커를 드라이빙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이들이 각자의 악기로 감정의 파고에 비례하는 큰 궤적을 그릴 때의 일렁임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전해지는 걸 듣고 구동에 있어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의견을 제작자에게 전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스터피스의 가장 큰 기술적 특징이자 장점인 스테레오 파워앰프로서 바이앰핑이 가능하다는 점을 적용하자 케이블에 공을 들였을 때와 같은 음악성의 대포적인 향상이 일어났다는 점. 현의 결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진해지고 섬세해졌고, 몽롱하게만 들렸던 피아노의 터치에는 미묘하게 다른 빛깔이 번뜩인다. 잠재력이라는 점에서는 명백하게 오딘 시리즈를 능가한다고 말해도 좋을 듯 싶다.
Grace Jones/ Nightclubbing
http://www.groovers.kr/mqs/album/LOT61cx
한때 만능의 BGM이었던 ‘I’ve seen that face before’.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디스코 버전화한 이 트랙은 지금 들어도 놀라운 일렉트릭 베이스 음이 담겨 있다. 샘플링 된 음으로 일종의 퍼즐을 짜는 것 같은 요즘의 일렉트로니카와는 달리 아직 ‘휴먼터치’가 살아 있는 댄스 뮤직. 오디오 파일들에게 이 트랙은 무엇보다 저음을 ‘음’으로 들을 수 있는 유명한, 그래서 친숙한 팝송이라는 이점을 갖고 있다. 하이파이에 익숙치 않은 이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여기에 이런 소리가 있는 줄 몰랐어’와 자매편 ‘이 소리가 이런 소리였나’를 오랜만에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마스터피스는 땡글땡끌하고 명징한 베이스 음을 들려줬다. 이 파워앰프는 당신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스피커를 운용하고 있든, 혹 부밍이 일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저음을 ‘음’으로 들려줄 것이다. mp3를 이어폰으로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저음을 몸으로 느끼는 적지 않은 오디오 파일들에게 마스터피스는 저음도 음이라는, 아니 저음이야말로 맑고 명료한 음이라는 점을 잊을 수 없도록 각인시킬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취미라고 부르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가격표를 붙인 물건들만이 순수 오디오로 거래되는, 하이파이가 아닌 하이엔드만이 남은 오디오 판에서, 마스터피스는(여전히 이 취미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미친 가격대이겠지만) 매우 선량한 가격을 매긴 좋은 파워앰프다. 공구가 성황리에 끝나서 이 게시판에서 좀 더 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고’ 남긴 리뷰를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