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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퍼런스 앰프의 의미를 다시 새기다. PASS XS 시리즈

작성자 | 운영자(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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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3 | 조회 : 4596 | 댓글 : 2,522 | [2016-09-0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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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디오 회사들 중에는 창립자의 이름을 딴 경우가 많다. 마크 레빈슨, , 제프 롤랜드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제 얘기할 앰프세트를 만든 패스가 설립한 패스 랩스도 이 명단을 단순한 명단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으로 만드는 데 단단히 한 몫하는 회사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넬슨 패스가 설립한 패스 랩스는 하이엔드 오디오의 1세대다. 공장 단위의 규모에서찍어내는방식이 아니라 차고 같은 곳에서 만드는, 개러지 메이커라고 흔히 불리지만 장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제작방식에 초점을 맞춘다면 수공예적이라고 해야 할 방식으로 만들어낸 패스의 앰프들은 회사가 창립된 1991년부터 단 한 번도 오디오 파일의 주목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1991년이라면 CD의 음이 바야흐로 숙성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도 트랜스포트나 DAC 이외의 분야에서 디지털에 대응하는 기기들이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고 있었다. 패스 래보러토리의 앰프군은 그 중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뽐냈는데, 트랜지스터 앰프이면서도 진공관 앰프를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소릿결과 매혹적인 음색, 무엇보다도 음반에 담긴 그 음이 담긴 그 곳의 그 시간에 듣는 이를 데려가는 듯한 현장감 때문에 오디오 파일 못지 않게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제 몸체만한 전원부를 각기 거느린 XS150  파워앰프와 XS 프리앰프는 출시된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동사 제품군에서 레퍼런스 라인업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대를 풍미한 크렐의 육중함과도 다른 덩치를 자랑하기로 소문난 패스의 파워앰프지만 XS 150의 크기는 설치해 놓고 보니 역대급이라고 해도 될 만치 거대하다. 어지간한 오디오 랙 2단 정도의 높이와 그 랙의 뒤로 삐져나올 듯이 보이는 두께.

 

오디오란 물건이 대체로 생긴대로 소리가 나오는 경험을 많이 했던 터라 전기를 넣자마자 대편성 오케스트라부터 걸어 보았는데 기대와 예상을 일거에 깨버리는 음이 나와버렸다. 그 뒤로 몇 시간 동안 차례로 들었던 음반과 음원들은 이 리뷰를 쓰기 전까지도 거듭 듣게 되어버려서 뜻하지 않게 이 리뷰의 레퍼런스가 되어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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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의 XS 150은 수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현재 HiFi.CO.KR 리스닝 랩에서 활약 중이다>



 

라흐마니노프/교향곡 3, 교향적 무곡

마리스 얀손스/St.페테르부르크 필

Warner Classics 5628092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제목이 표방하고 있는 심포닉한 면과 춤곡의 성격이 혼재한, 매우 박짐감 있고 정치한 음악이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답게 무척이나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연주하기에도, 연주가 담긴 음반을 재생하기에도 까다로울 수밖에. 이 곡에서 일종의 무용수 역할을 맡은 현악군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합주할 때 이들을 지상에 묶어놓는 듯한 큰북의 타격음으로 이루어진 첫 곡의 서주부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 덩치의 고출력 파워들이 토해내곤 하는 육중하지만 어딘가 심각한 음과는 궤를 달리 하는자연스런음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오케스트라 서법이 자아내는 비상과 착륙의 대비를 들려주는 방식 자체가 다른 여타 앰프들과는 다르다. 각 악기군이 연주하는 위치가 그린 듯 눈 앞에 떠오르지만 핀 포인트로 찍듯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패스의 음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특유의 음색이 여전하지만 St.페테르부르크의 유서 깊은 음색을 가릴 정도로 목청이 높지는 않다. 이른바 모니터링을 저해할만한 비중립성은 발견할 수 없다.

 

가장 감탄할 만한 대목은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로 리스닝 룸에 현현했는데도 전혀 위압적이지가 않고 도리어 산뜻하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지휘자 얀손스가 이 곡을 해석하는 핵심적 요소인데 이를 만족시키는 오디오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아마도 비상과 착지의 이중주를 이렇게나 높은 수준에서 연주해내는 오디오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 싶다.

 

 

 

헨델/<뻐꾸기와 나이팅게일> 4곡의 오르간 협주곡

트레버 피노크/잉글리쉬 콘소트/사이먼 프레스톤

Archiv 4196342

 

9살 때 오르간을 배우기 시작한 헨델은 1709년 로마에서 동갑내기인 스카를라티와 하프시코드로 실력을 겨룰 정도로 뛰어난 건반악기 주자였다. 그럼에도 오르간은 단 한 번도 헨델의 작품세계에서 주역이 되지 못했지만 헨델은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나 오라트리오의 막간에 흥을 돋우기 위해 오르간 즉흥연주를 선보이곤 했는데, 나중에 이를 독립된 협주곡으로 정리해서, ‘오르간 협주곡이라는 흔치 않은 작품군을 자신의 방대한 작품목록에 남겨 놓았다. <뻐꾸기와 나이팅게일> 2악장에 제명에 쓰인 두 마리 새의 울음소리를 오르간으로 성대모사하는 장면이 나와서 붙여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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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 150은 PASS의 레퍼런스이다. 전원부와 증폭부로 분리되어 총 4덩어리로 구성된다>


 

오르간은 오디오로 재생하기가 가장 힘든 악기의 하나다. 중후장대한 음량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오르간 음악의 레코드 연주에서 넘어야 할 난관의 출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악기가 낮게 노래부를 때의 안온하고 낭랑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야말로 이 장르 레코드 연주의 묘미이기 때문. <뻐꾸기와 나이팅게일> 2악장을 들으면서 절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됐다. 오르간의 성대모사가 제대로 재현된 수준을 넘어서 작곡가가 의도한 유머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연주됐기 때문이리라.

 

하루를 시작하는 음악을 딱히 정해놓고 듣지는 않고 있었는데, 이 음반을 패스의 앰프로 듣고 나서는 이 음반으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음악적으로는 아침과 찰떡궁합인 바로크, 오디오적으로는 오디오를 깨우는, 무엇보다 스피커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오르간이 제격이라는 오디오 파일적인 판단을 모두 만족시키니까. 하지만 패스 앰프 세트가 이 음반을 유럽의 대성당에서 들었던 바로 그음악으로 들려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차르트/피아노 협주곡 6, 17, 21

게자 안다/잘츠부르크 카메라타 아카데미아

DG 4474362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포스터를 커버로 하는 이 명반은 염가 전집물과 오리지날스 시리즈로 출시된 것까지 본사 발매반으로는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하는데, 오리지날스 시리즈의 위엄, 이라고 해도 좋을 현격한 음질차이를 들려준다.

 

피아노는 아마도 오디오와 가장 닮은 악기일 것이다.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이 악기의 매커니즘은 오갈데 없는 기계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주법을 배우지 않으면 소리 자체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여타의 악기들과는 달리 피아노는 누구라도 88개의 건반 중 하나를 누르면 소리를 낼 수 있다. 피아노의 매커니즘이 입력과 출력이라는 기계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계와도 같은 악기에서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소리를 뽑아내는 피아니스트야말로 소리의 연금술사인 셈이지만, 바로 이 부분이 오디오로 재생할 때 까다롭게 작용한다.

 

손실압축인 mp3를 이어폰이나 컴퓨터 스피커로 듣기가 보편적인 청취방식이 된 요즘 하이파이 그레이드쯤 돼서야 자태를 드러내는 피아니스트의터치를 경험한 이는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반면 피아니스트 고유의 음색은 mp3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식별가능하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이 음색이라는 것이터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에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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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 150은 강렬한 비주얼을 제공한다. 레퍼런스 파워앰프의 세계에서 필수적 요소이기도 하다>


 

DG는 리매스터링 시리즈 유행을 몰고 온 자사의 대표적인 시리즈 오리지날스를 고음질 음원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이 음원은 단연 군계일학이다. 잘 세팅된 음감 전용 PC나 파일뮤직 전용 플레이어로 듣는 이 음원의 고음질 파일 버전은 심지어 오리지날스의 피아노 소리마저도 디지털 피아노의 그것처럼 들리게 만든다. 왼손과 오른손의 균형이 완벽에 가까운 게자 안다의 손가락이 나붓나붓 건반을 짚어가는광경이 살포시 눈앞에 떠오른다. 눈길을 좌우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파워앰프들에 주게 되면 그 시각적인 미스매칭에 어이가 없을 지경.

 

 

제작자 넬슨 패스가 지향하는 음은 기분 좋고 편안한 음, 장시간 들어도 지치지 않고 기분 좋고 편안한 음이라고 한다. 지향하는 바는 분명히 명확하지만 그 실현이라는 점에선 글쎄인 메이커를 수도 없이 겪어봤지만 패스의 경우에는 제작자의 의도와 구현된 음 사이의 괴리가 전혀라고 할만치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앰프 세트가 들려주는 음이 듣는 이를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는 그 장소와 그 시간으로 즉시 데려가주는 듯한현장감이었다. 소릿결 만큼이나 진공관 앰프를 방불케 하는 섀시가 내뿜는 열기와 함께 패스의 레퍼런스 라인업은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이 흘리는 땀과 닮아 있는 땀방울을 듣는 이의 이마에 맺히게 해준다.

 

개러지 메이커로 시작한 하이엔드 1세대는 오디오 제작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회사가 없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프 롤렌드와 함께 넬슨 패스는 자신이 창업한, 자신의 이름을 붙인 회사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드문 존재. 4년 전에 나온 이 앰프 세트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니 들려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음악 애호가이든 오디오 파일이든 반드시 경험해보길 권한다.



글 - 최윤구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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