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보다 많은 리뷰를 작성해오고 있는 요즘, 정작 밖에서
오랜 시간 음악을 듣고 집으로 귀가를 하면 집에서 음악 듣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항상 집에서
음악이 흐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HiFi.CO.KR 운영자이기도 한 나는 생각이 참 많은 편이다. 몇 해 전부터 생각 버리기라는 것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서 접할 때가 있었는데 수 많은 생각들이
몸에 밸런스를 깨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놀라웠던 것은 사람이 하루에 많게는 2만가지에 이르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직업병이 되어버린 현재 나는 어떤 영감이 떠오르면 거기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못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숙이 들어가려는 기질이 있다. 수 많은 공동구매
제품이나 그 아이템에 대한 활용, 그리고 공동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이렇게 나온 것이다.
한 때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를 하지 않으면 정리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갓길에 차를 멈추고
메모한 뒤 다시 운전할 때도 있었다.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아이디어라는 것은 중요하다. 체계적인
과학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모든 산업의 구성 요소엔 작은 발견 또는 아이디어에 의해 구현 된 것이 많다. 많은 위인들의 자서전에서 이러한 사실들을 뒷받침 해준다.
하이파이 컴포넌트도 마찬가지다. 사실 하이파이 컴포넌트에 대해
아직까지 미신이라고 믿는 이들도 많다. 지금까지도 상식적으로 설계가 다른 케이블에 따라 재생음의 품질이
바뀐다고 이야기 하면 황당하다는 듯 웃음 치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아이러니 했던 기억 중 하나가 국내 네트워크 망 설계 전문가로 인정 받는 HiFi.CO.KR 회원 중 한 분도 네트워크 케이블에 따른 음질 차이를 경험하면서도 도저히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가진 분도 있다.
사실 하이파이 컴포넌트를 위한 케이블 변화도 어느 정도 과학적인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경험에 의한 것이
많다. 일종에 발견에 의한 것이고 실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공동제작 아이템도 어느 정도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만 정작 어떤 시도와 실험, 그리고 경험에 의한 것으로 마무리 될 때가 많다. 왜냐면 튜닝의
주파수 범위는 결국 인간의 감성 영역 안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자비안 델리치오자 스피커 역시 근본적인 중저가 스피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디어가 접목된
스피커라 할 수 있다. 스피커 제작에 사용할 수 있는 비용은 제한돼 있고 이러한 틀 안에서 고음질을
얻어내기 위한 시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중저가형 스피커가 고음질 구현에서 가장 고전하는 부분이 어디일까?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캐비닛 설계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엔진이나 건축에도 결코 바뀔 수 없는 이론적
요소들이 있다. 스피커도 현재의 발음 방식을 탈피할 수 있는 이론이 생긴다면 캐비닛이 필요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캐비닛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오디오파일이 재생음에서 얻고자 하는 에너지만큼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 캐비닛이다.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해결하기 위해 캐비닛 디자인, 조금
더 고급스러운 단어를 빌리자면 어쿠스틱 디자인이 발달하고 있는데 문제는 제작 원가가 하염없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속 캐비닛 스피커가 등장하였고 카본 프레임 스피커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런 시도는 하이엔드 오디오 스피커에서나 가능한 것인데 100만원대
스피커에서는 구현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많은 하이파이 스피커 메이커가 좋은 재생음을 얻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캐비닛을 없앤 배플만 존재하는 스피커를 제작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멍청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청 주파수 중 낮은 주파수로 내려갈수록 급격한 회절이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콘이 앞으로 움직일 때 재생되는 파지티브 재생음이나 콘이 뒤로 움직일 때 재생되는 네거티브 재생음은 99% 동일하다.
이것은 주파수뿐 아니라 에너지의 양도 같다는 의미이다.
유일하게 다른 것이 위상 특성으로 정확하게 180도 다른 것이다. 앞서 설명한대로 회절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특성과 정 반대되는 위상의 같은 범위의 소리 에너지가 만나게 되면
귀신 같이 재생음은 부딪쳐 사라진다. 15인치 우퍼가 아니라 30인치
우퍼를 설치해도 결과는 같다.
그래서 캐비닛은 크게 네거티브 재생음을 가두는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저가 스피커에서 좋은 재생음을 얻기 어려운 것은 사용 가능한 캐비닛 소재가 우드로
한정되고 그것이 MDF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 두텁게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불투명한 재생음을 벗어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자비안의 델리치오자가 제시한 것이 충진재를 통한 댐핑이며 결과적으로 캐비닛 울림을 효과적으로
억제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조차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리스닝 룸의 튜닝재와도 관련이 깊다. 이를테면 특정
대역의 흡음을 위해 룸 트리트먼트를 사용했다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주변 주파수 대역까지 흡음이 일어나고 많다. 또한
하이파이 스피커엔 특정 대역 주파수가 꺼지게 되면 일종의 나비 효과처럼 다른 주파수 대역에 청감상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복잡한
경우의 수와 맞닥뜨릴 수 있다.
캐비닛에 별도의 댐핑재를 통해 캐비닛의 통울림을 통제한다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비안의 델리치오자는 철저하게 청감적으로 이와 같은 아이디어 요소를 접목시켜 밸런스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스피커이다. 오직 캐비닛의 가장 아랫부분에 적절한 양의 모래를
충진 시켜 캐비닛의 통울림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모래와 같은 충진재를 사용할 경우 댐핑 효과를 통해 저역의 통울림을 억제할 수 있지만 중역과 고역에
있어 딱딱하거나 아주 드라이한 역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비안의 델리치오차는
그러한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고 있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캐비닛을 완성시키고 난 뒤에 드라이버나 크로스오버를 커스터마이징시킨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의 성적표는 생각보다 좋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자비안의 델리치오차의 기본적인 재생음의 성격은 중저역이 무척 타이트한 스피커라는 것이다. 드라이버 유닛의 구성은 이태리에서 제작된 오디오바르네타 1인치 실크돔
트위터와 6인치 더블 미드/우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델리치오차는 2웨이 구성이 아닌 2.5웨이 구성으로 제작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플로어
스탠드형 스피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리뷰를 위한 스피커 시청에 사용된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는 100만원대
마그낫사의 MR780이었다. 그러니까 크게 스피커를 돋보이게
할 만한 구성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칫 델리치오차가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까지 까먹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촉촉한 중고역의 특징과 부드러운
음색으로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칫 이러한 성향을 지닌 스피커들의 공통적 특징이 재생음이 번지는 현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델리치오차
역시 기본적인 튜닝의 성향은 이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음의 결과물은 달랐다. 상당히 명징하게
느껴지는 중고역의 특성으로 이런 효과는 무척 타이트하게 반응하는 6인치 더블/우퍼의 상호 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6인치 미드/우퍼는
다른 미드/우퍼와 달리 무척 높은 자체 댐핑을 갖춘 드라이버로 추정했다. 자비안 사이트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 드라이버에 대한 설명에서도 ‘익스트림리
리니어 리스폰스’라 표기하고 있는데 청감상 아주 강력한 자기 회로를 바탕으로 높은 댐핑을 가지는 스파이더로
타이트한 반응을 얻어내는 방식이기 보단 종합적인 밸런스에서 타이트한 반응을 얻어 낼 수 있는 밸런스로 설계된 드라이버의 인상이 강했다.
또한 미드/우퍼 진동판 자체도 폴리프로필렌으로 제작돼 근본적으로
무척 견고한 느낌을 지향하고 있으며 좋은 의미에서 스티프한 성질을 갖추고 있다. 100만원대 스피커에서
이런 시도는 자비안과 같은 몇 안 되는 회사에서 가능하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다.
최근 나를 조금씩 놀라게 만드는 것은 자비안은 스피커 생산에 라인업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중저가 스피커를 많이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단순히 저렴하게 스피커를 제작,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생각 이상으로 괜찮은 중저가 스피커 제작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과물은 남들과 똑 같은 설계로 비슷한 품질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아이디어를 통해
고음질을 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확실히 자비안의 델리치오차는 비교 가능한 다른 스피커들에 비해 보다 경쾌하고 명징한 재생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재생음이 무척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된 재생음의 인상이다. 그런데 밸런스가 잘 잡힌 재생음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보다 무척 깔끔하다는 인상이 더욱 앞섰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소는 스피커 하단에 모래를 채워 얻은 댐핑 효과이기도 할
텐데 앞서 설명한대로 철저하게 청감에 의해 튜닝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MDF 스피커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었는데 캐비닛은 비교적 조용하면서도 붕붕거리는 저음의 잡음이 억제된 느낌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역의 배음은 진하고 풍부하고 느껴졌다. 얼핏
들으면 초고역까지 소스라치게 끌어 올리는 스피커들과 비슷한 중고역의 밀도와 연결감을 들려주기도 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분 좋은 착색을 의도한 재생음이라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일 클래스에서 오디오적 쾌감이 덜하고 호감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스피커에 비해 큰 경쟁력을 갖추었으며
이는 좋은 시도이자 결과물 자체도 나쁘지 않다 판단했다.
확실한 것은 베이스의 연주나 깊은 저음이 녹음된 레코드 재생에서 둔중한 느낌이 없으며 제품의 체급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좋은 해상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물론 탱글탱글한 중저음을 선사하기엔 풍부한 양감에 아쉬움이 따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이런 방향의 재생음이 확실히 더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자비안의 델리치오차의 재생음은 전반적으로 윤택함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100만원대에 이런 음악적 늬앙스를 풍기는 스피커가 흔치 않기
때문에 그저 그런 음색에 질린 합리적인 음악 애호가나 오디오파일이라면 이 스피커에 주목해 보길 바란다. 또한
델리치오차가 전 대역에 걸친 재생음에 해상력이 상당히 좋다는 것도 잊어선 안될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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