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Boulder)의 레퍼런스 프리 앰프 3010 시연회가 9월 5일
저녁 수입사인 샘오디오(samaudio.co.kr)에서 열렸다. 시작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시간을 맞추고자 근처 삼성동 먹자골목을 이리저리 헤매었다. 여기서 친구들하고
저녁을 먹었던 게 10여 년도 더 전의 이야기. 시간은 냉정하게
무심하게 흐른다. 여전히 젊음은 시끌시끌 그 자리에 모여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쌓였던 울분을 털어내는 아우성일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그마저도 아직 인생의 여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의 열기로
느껴졌고 초가을 저녁의 삽상한 바람과 어우러져 조화롭게 연주되는 콘체르토 같았다. 들어가자 마자 방장인
최성근씨(이하 방장으로 통일)가 있어 반갑게 안부인사를 물었다. 평소 하이파이 카페 활동도 드물면서 이런 시청회만 골라 참석하는 얌체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도 없지 않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얼굴 보는 게 어디냐고 뻔뻔한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이미 와있던 일곱 분의 다른 참가자들과
십 여분 정도 기다리니 시연회가 시작되었다.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윌슨 오디오 알렉스(Wilson audio
ALEXX) 스피커. 몇 달 전 서울 오디오쇼에서 가장 느낌이 좋았던 원키(OneKey) 부스에서 들었던 스피커가 알렉스라 더욱 기대감이 높아졌다. 방장의
간단한 인사와 더불어 3010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었는데 몇몇 테크니컬한 사항은 나 같은 문과생에겐
백 프로 이해하기 힘든 얘기지만 극한을 추구하는 볼더의 자세와 그 만듦새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것은 3010이 프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는 것이다. 들고 갈 수 있으면 그냥 주겠다는 방장의 농담도 이어졌다. 나중에
스펙을 찾아보니 전원부와 합쳐서 123 파운드(55.8 kg)이었다. 크레이트를 짜서 보내는 지 배송무게는 무려 235 파운드(106.6 kg)! 이거 배송하려면 한 두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괴물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앰프 무게 달아보면 성능 알 수 있다 말하는데 무게만으로 이미 세계 최고였다.
알렉스 스피커+볼더 3010 프리+볼더 3060 스테레오 파워앰프, 그리고
소스 기기는 탑 클래스 시연회의 단골인 dcs의 비발디(Vivaldi)가
들려준 첫 번째 연주는 안토니오 포르치오네(Antonio Forcione) 곡이었다. 화려하면서도 명징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사람이라 오디오 파일이라면 누구나 한 장 쯤은 들고 있는 기타리스트라
역시 시연회 처음을 장식했다. 기타 연주는 사실상 기본적 수준 이상의 시스템이라면 대부분 좋게 들리는
장르다. 이 말은 기타 연주마저 시원찮은 시스템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기에 오디오 시스템 체크에
기타 연주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다.
평소에 내가 듣던 포르치오네가 오늘따라 체력과 컨디션이 많이 좋아진 느낌이다.
늘 팽팽한 긴장감을 들려주는 포르치오네지만 어제 잠도 잘 자고 아침에 밥도 맛있게 잘 먹었는지 연주가 힘이 넘치면서도 아주 섬세하다. 특히나 지판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 모양이 눈에 보이는 듯 하며 트레몰로가 끝까지 살아있다. 예전에 알던 포르치오네가 피지컬 트레이닝을 열심히 받고 복근은 더 단단해지고 지구력과 순발력이 더 좋아져서
나타난 느낌이랄까? 어쿠스틱 기타에서 기분 좋은 유리 같은 투명함과 메탈의 날카로움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연주였다. 서울오디오 쇼의 단 다고스티노(Dan D’Agostino)+알렉스
조합에서 더 이상의 사운드는 힘들지 않나 생각했는데 볼더+알렉스 조합이 한 수 위다. 저음의 힘은 더 강력하고 고음은 더 섬세하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디오 기기의 실력은 저음에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해 왔기에 항상 저음 컨트롤에 포커스를 맞추고 듣는데 저음이 힘이 넘치면서도 부밍(Booming)의 부작용이 없이 탱글탱글하다.
볼더 앰프의 치밀함과 한 치의 빈틈도 허용치 않는 제작정신에 대해 방장의 논리적이고 기술적인 설명이 이어졌고 중간 중간 여러 노래가 연주되었는데 진짜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라고
이번 시연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 “덩케르크” (Dunkirk) OST중 ‘Supermarine’이 연주되었다. 이 영화는 그냥 보면 안되고 반드시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 해서 좋은 시간대와 영화관 찾느라 차일 피일 미루다
아직 못 본 영화인데 OST부터 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스포츠카 제로백(0 à 100kph) 찍듯이 달리는 엄청난 곡이었다. 잘게 자른 비트의 반복적이고
점층적인 박자와 사이렌의 긴장감이 엄청난 곡이었다. 처음부터 가슴을 때리듯이 밀려오더니 점점 더 박자와
사운드가 고조되는데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내 심장이 견뎌낼까 싶을 정도로 강한 압박감으로 사운드가 밀려왔다. 공중전을
벌이는 전투기의 프로펠러 같은 박자는 우퍼에서 미친 듯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왔고 불을 뿜으며 내리 꽂히는 전투기의 절망감은 사이렌의 고음으로
트위터에서 절박하게 밀려 나왔다.
‘아, 이러다 스피커 터지는
거 아닌가? 저 비싼 스피커가 터지면 어쩌지? 볼더 앰프는
저렇게 밀어 부치다 전원부가 타 버리는 건 아닐까? 아니, 그
전에 내 심장이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나?”
연주가 끝나자 전쟁이 끝난 듯 사방이 고요해졌고 의자에 편하게 앉아 있는 내 몸은 경사가 가파른 고갯길을 단수가
고정된 픽시(Fixie) 자전거로 업힐 한 후에 고갯마루에서 터질 듯한 심장을 식히는 기분이었다. 집에 와서 이 노래를 비교조차 하기 민망한 내 시스템으로 들어 봤다. 백만
대군이 전면전을 벌이던 전투가 동네 꼬마들 병정놀이로 변해서 들렸다. 제목은 같지만 같은 노래가 아니었다.
방장이 들려주는 순서가 바뀌었다며 덩케르크 OST보다 먼저 들려줬어야
하는 곡이었다며 한 곡을 더 들려줬는데 칼 젠킨스(Karl Jenkins : 난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방장 덕분에 한 사람 알게 됐다. 몇 년 동안 늘 듣던 음반만 듣고 새로운 음반 듣는 일을 좀 게을리하게
된 탓이다.)의 ‘팔라디오’(Palladio)였다. 덩케르크에서 미친 듯이 시속 300킬로로 달리던 볼더+알렉스가 이 곡에선 마장마술 경기에서 명마의 우아한 속보처럼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역시나 저음부가 너무 기분 좋은 소리였고 현의 가닥 가닥이 살아 있었다.
도대체 궁극의 사운드는 무엇일까? 이전에 많은 시연회에서 이 정도면
끝이다 싶은 몇 번의 조합을 경험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를 후리는 새로운 조합과
사운드가 등장하니 죽을 때까지 과연 궁극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가 있을까? 아니, 더 정확히는 궁극의 사운드라는 게 존재할 수가 있을까? 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좋다고 인정하는 그런 사운드 말이다. 오디오파일들에겐 내 귀에 좋은 오디오가 좋은 오디오라는
진리가 있으니 주파수 스펙이나 수치상으로는 궁극의 사운드가 있을 지 모르나 모두가 만장일치로 엄지를 올리는 사운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오디오 명기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오디오 업체들이 오늘도 그들만의 최고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저리도 노력하는 것이리라.
소리가 흘러 나오는 마지막 터미널이 스피커라 시연회에서 주로 스피커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고 그 다음이 파워 앰프
그 다음이 프리 그 다음이 소스기기이다. 이번 볼더 프리앰프 3010
시연회는 오디오 파일들에게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프리 앰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한다.
시연회 귀갓길은 언제나 마음이 복잡하다. 귀는 호강했는데 마음은 복잡하고
무겁다. 방금 들은 저 소리를 내가 마련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가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민인 것이다. 항상 결론은 돈 많은 친구를 꼬드기자는 것이다! 돈 많은 친구가 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에 관심이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결정적인
조건이 하나 추가되어야 하는데… 그 친구가 싫증을 아주 잘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오 기기를 들이면 일년도 안돼 중고로 내치는 친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때 내가 중고로 싸게 살 테니 말이다. ㅎㅎㅎ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끝마치긴 했으나 귀중한 시연회를 마련해 주신 샘오디오와 허리가 약간
아픈 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준 방장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6 comments
장문에 글 잘 읽었습니다. 시연회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신 것이 글로 팍팍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연회 준비한 보람이 철철 넘칩니다.
다음에도 더 유익한 시청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그리고 추천 한방 꾸욱~ 누르고 갑니다. ^^
요새 하이파이 온 게시판을 누비며 글을 읽고 있습니다. 방장님의 노력이 대단하더군요… 좀 더 열심히 하이파이 활동을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다음에 제 친구 동수가 들어오면 좋은 음악 들으며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군요.
친구 동수를 꼭 만나시길 바라겠습니다 ㅎㅎ 긴 감상글 잘 보았습니다. 예전에 누군가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없으니 취미의 세계이다 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
동수라는 친구는 미국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인데 저를 하이파이 카페로 인도한 친구죠.^^ 그렇죠. 각자 자기 기준에 맞춰 만족하면 그게 정답이겠죠…
요즘 읽은 시연회 후기 중에 가장 인상적인 후기입니다.
^^ 고맙습니다. 맨날 방장님 시연회 구경만 해서 빚 갚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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