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마크 레빈슨의 영광을
계승하는 프리앰프의 등장.
마크 레빈슨의 No.32의 성향을 현대적 성능으로 재무장.
글 쓰는 재주도 특별히 없지만
굳이 해드라인을 적어보았다. 이유는 다름아닌 이번 리뷰에서 다룰 마크 레빈슨 프리앰프 no.523 때문인데, 그 만큼 많은 인상을 준 기기이기 때문이다. (경어체는 생략하였습니다.)
현재 하만그룹 산하인 마크
레빈슨의 최신작 프리앰프를 개인 리스닝룸에서 들어볼 수 있었다. Mark Levinson No 523은 No526에서 DAC 기능이 빠진,
말을 바꾸면 순수한 아날로그 프리앰프 기능만 넣은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별도로 구성된
순수 A-class의 phono amp단이 있으며 또한 순수
A-class로 작동하는 해드폰 단자도 구비해놓는 아주 ‘알찬’ 구성을 갖고 있다.
디자인
디자인은 어딘가 모자라 보였던 근래의 마크의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균형미와 세련미가 있어,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내 리스닝 룸에서
빠졌는데 소리의 핵심을 잃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눈을 떠보면 실재로 비주얼적으로도 허전하게 만들고 말았다. 사진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정말 디자인은 환상적이다. (이제까지 이렇게 앰프 디자인을 대놓고 칭찬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신다.)
[리스닝룸 설치
사진. 옆으로도 넓지만 위에서 보면 거의 정사각형이기 때문에 크기가 상당하다. 무게도 많이 나간다. 상판도 두꺼운 편.]
[523의 블랙과
약간의 화이트 그리고 붉은 LED로 구성된 마크 레빈슨만의 아이덴티티는 실재로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전원을 켤 때 표시창에 나타나는 Mark Levinson 이라는
글자는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감은 매끈한 것이 품질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묻어난다.]
Mark Levinson Pure Path circuit design.
마크 레빈슨의 앰프들이 그렇지만 No 523도 신호 경로의 최소화를
추구하였다고 한다. 실재로 마크 레빈슨의 엔지니어들은 이제까지의 마크 프리앰프 명기의 회로를 섭렵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이들이 이야기 하는 Pure Path circuit design은
최대한 단순화 시키면서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소자만 정확하게 사용하여 음악신호의 순도를 최고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실재로 안을 보면 수 많은 소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소자를 가져다 사용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마크 레빈슨 고유의 음색을 유지하면서 현대 프리앰프가 가져야 할 기본 적인 덕목을 위한 것임을 시청하면서
알 수 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No. 523 에서는 성격이 다른 두가지
트랜지스터를 묶은 것을 한 단위의 소자로 구성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마크 레빈슨의 음색 특성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한가지 트랜지스터를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높은 게인 및 낮은 노이드라는 장점을 얻으면서 노이즈 등의 단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No 523에서는 그 이름만큼이나 순도
높은 재생음의 세계를 들려주었다.
첼리비다케 지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EMI]. 사실 EMI의 첼리비다케 전집은 실황녹음이고 박수소리가
들어있어 그 소리를 듣고 첫인상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박수소리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지만
실제 연주가 시작된 후에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연주소리가 강렬하게 들리지만 예전에는 잘 들리지
않았던 연주중의 청중의 기척이라던지 기침소리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소리들이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로 내가 그 공간에 함께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그런
만큼 오케스트라의 표현도 포커싱이 정확하고 분리도가 뛰어났다. 하지만
No 523의 진짜 무서운 점은 높은 순도와 에너지감을 수반한 중역과 저역이며 이것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나믹이 뛰어나게 들린다. 이는 지휘하다가도 액샌트를
주는 부분에서는 연주중에도 기합을 넣을 정도의 열정을 표현하는 첼리비다케가 모차르트를 모차르트답게 지휘하기 위해 다소 자중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열정적인 면을 끝까지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한다. 이 에너지 감은 일전에 신형 6010D를 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흡사하였다. 하지만 MBL의 경우 음악적이지만 뭔가 약간의 엄격함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면 마크
523은 음을 상당히 둥글고 유연하게 표현하였다.
아르농쿠르 지휘의 모차르트 레퀴엠[deusche harmonia mundi,
44.1kHz, 16bit]의 경우 No 523은 아주 여유 있게 표현을 한다. 무대가 넓으면서도 음상이 정확하게 맺히고 흔들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대
깊이의 표현도 뛰어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오케스트라, 가수(독창), 합창단의 위치를 아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첫 악장 도입부의
고악기로 연주하는 관악기의 배음과 공간감이 특별하며 또한 소프라노의 입에서 떠난 소리가 무대 공간을 퍼져나가는 잔향 묘사가 일품이었다. 자세히 들으면 합창이 나올 때도 이 솔리스트의 목소리가 공간에 녹아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 이 프리앰프는 좀 처럼 흥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자로 하여금 마크 레빈슨 No. 523은 이 훌륭한 프리앰프가 재현하는 깊은 공간에 청자를 녹아들게
한다. 다이나믹이 뛰어나기 때문에 모차르트나 지휘자가 이 레퀴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죽음의 여러가지 면에
대해 더 극적으로 그리고 고품위로 들려준다.
[가까이서 보면 섀시 표면 질감이 밋밋하지 않은데 표면의 느낌은 매끄럽다. 흰 볼륨 노브의 형태는 마크 레빈슨의 전매특허.]
R-2R Ladder Volume
요즘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 프리앰프를 설치하고 밤에 다소 낮은 음량으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상당히 낮은 음량까지도 밸런스가 잘 유지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R-2R ladder 저항 때문이라고 운영자님이 답변을 주셨는데, 찾아보니
저항을 사다리 방식으로 구성하는 저항 구성 방법이다. 마크 레빈슨의 엔지니어들은 기존 방식의 저항이
갖는 기계적 열화등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R-2R ladder 저항을 그들의 방식으로 설계하고 구현하여, 아주
선형도가 높고 기계적 접촉이 없어 성능 열화 또한 없는 우수한 방식으로 완성하였는데 이를 그들의 pure
path design 철학을 구성하는 초석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실재 사용자 입장에서 No 523의 볼륨단은 실용 영역대에서는 0.1단위로 촘촘히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정교한 볼륨 설정이 가능하다. 게다가 볼륨 노브의 가공상태나 이것을 돌릴 때의 느낌도 훌륭하다. 이런 감성 품질은 No. 380이나 32에서부터 기인된 것으로 이것을 소유한 사람의 만족감을 더욱 올리는 효과가 있다.
[사진은 No 526 내부. No 523의 경우 백패널쪽 중앙에 있는 DAC에 해당하는
보드가 없을 것이다. 프리앰프 역할에만 치중한 것인데 전원부가 같은 만큼 프리앰프 본연의 성능은 523이 보다 우수할 것으로 보인다.]
두터운 중역, 저역 시간이 지나면서 고역의 표현력도 피어나.
2000년 전후의 스테레오 사운드를 보면 그 이전 시대에 가졌던 앰프들의
개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글들을 꽤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특히
프리앰프도 그러할까? 최근의 이름난 프리앰프들을 경험하여 본 바로는 정말로 각자 개성만점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계자의 귀와 추구하는 점이 있으며 사용된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에 우리의
지갑을 여는 것은 그 아이덴티티를 또한 구매하기 위함이다. 마크
523은 기존 마크 32가 가진 사운드 아이덴티티를 계승한 적자이며 그에 머물지 않고 스피드를
빠르게 하는 등의 현대화도 철저히 꾀하였다.
집에 온지 5일차, 그날은
재즈가 유난히 좋게 들렸다. Charles Lloyd의 Mirror
[ECM, 88.2kHz, 24bit] 에서 색소폰 소리는 리드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의 자세함도 잘 들리지만 특유의 약간 어눌한 듯한
바람소리 섞인 울림도 사실적이며 멋지게 표현한다. 특유의 유연함과 에너지 감을 동반한 중저역 표현 때문에
재즈가 가져야 할 그루브를 잘 살렸고 특히 베이스부의 리듬감이 듣는 사람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피에가
스피커에서도 진득한 표현이 뭍어난다. (담배연기까지 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No 523에 피가 조금 돈 것인지, 고역의 표현이…좀 더 피어올랐다.
Florestan Trio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트리오[Hyperion, 44.1kHz, 16bit]에서 이전에 느끼지 못한 차분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만큼 No 523이 그려내는 무대나 여유로움이 크기 넓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연주는 각 연주가의 개성보다는 앙상블 연주자들이 하나로 녹아 들어간 듯한 표현이 좋은데, 너무 녹아
들어가서 악기별 연주가 잘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523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게다가 약음과 강음의 진폭은 종종 놀랄 만큼 크게 들린다. 그 만큼
음악을 적극적이고 농밀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1악장의 우수어린 도입부부터 가슴 깊이 파고든다.
프리앰프로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뀌는 것을 느끼며 새삼 프리앰프의 중요성 특히 좋은 프리앰프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오는 프리앰프 불용론이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볼륨 조정이 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여기서 나온 정보의 해상력을
프리앰프가 까먹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것이다. 기기도 한 번 더 거치는데다가 케이블도 한 번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증폭이라는 면을 봤을 때 프리앰프는 아직은 필요하다고 본다. 게다가
해상력은 하이엔드 오디오에서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우리는 보통 해상력만을 염두하고 오디오를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번 리뷰를 작성하면서
단순히 이 앰프를 거치면 소리가 어떻게 나온다는 것만 전달하려 했다면 상당히 짧은 분량으로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프리앰프를 접해보면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이 통일감이나 밸런스를 갖고 음악에 묻어나올 때는 훌륭하다는 생각에 도달친다. 마크 레빈슨 No 523은 잘 만들어진 프리앰프이며 게다가 훌륭하기까지
하다. No 523이 그리는 무대는 넓고 그 속을 마치 핀포인트로 잡듯 정확하게 그려내며 중역대의 음색은
두터우면서 사실적이다. 그리고 여유가 크기 때문에 드러내진 않지만 고역도 섬세하며 화려할 줄 안다. 이를 통해 듣는 음악은 초보 시절 내게 큰 파문을 던져주었던 것처럼 귓가에 남는 여운을 갖게 한다.
90년대 말, 내가 하이엔드
오디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 바로 마크 레빈슨과 윌슨 오디오의 조합이었다. 그
당시 초보자였던 나에게 그 조합은 두툼하면서도 실재음에 충실한… 말 그대로 High Fidelity를 느끼게 해주었었다. 중저역의 표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았겼었고, 이후 한 동안은 꿈에도 나올 정도로 많이 생각했었다. (마크의 디자인도 큰 몫을 했던 거 같다.) 이런 마크 레빈슨의
음색은 No 32에서 절정을 이루었었고, 이전의 No 26s를 외치던 많은 이들도 새로운 마크 레빈슨의 레퍼런스 프리의 출현을 환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No 523이 그 명성을 이을 것이라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프론트
패널도 두꺼우며 단순하면서도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