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헤드폰을 즐겨 듣지 않았던 이유는 마음에 드는 제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없이 이상적인 헤드폰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신제품이 발매될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접할 기회를 만들었다.
아직도 필자 주변에는 헤드폰을 광적으로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헤드폰의 한계를 체감했는지 하이파이 시스템도 함께 병행하고 있다. 병행이라고 하지만 중심은 하이파이
시스템으로 옮겨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훌륭한 헤드폰을 제작하기란 어렵기도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하이엔드
헤드폰도 상대적으로 하이엔드 스피커 디자인에 비해 디자인이 쉽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번번히 하이엔드 헤드폰에 실망한 것은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밸런스를 가져갈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젠하이져의 오르페우스 시스템도 청취해 보았고 정전형 방식의 헤드폰에 커스텀 메이드로 제작 되었다는 진공관
타입의 헤드폰 앰프도 어렵게 부탁해 들어 보았다. 여기엔 내가 경험한 수 많은 하이엔드 소스기기들과
케이블들이 연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한 때는 헤드폰의 한계라며
그냥 지나쳐 버릴 때도 있었다. 그때 젠하이저 HD800을
만난 것 같다. 놀라웠던 것은 가격이었다. 생각했던 가격보다
낮게 책정 되었던 것, 그리고 무엇 하나 압도적이라고 설명할 수 없었던 평균점(평탄한 밸런스)에 나는 비로써야 만족할만한 헤드폰이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필자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무난한 헤드폰이었지만 나는 특정 포인트에서 아무리 뛰어난 소리를 재생한다 할지라도
한쪽으로 치우친 헤드폰을 정말 싫어한다.
그 이후 3배 이상의 가격표가 매겨진 헤드폰들도 발매 되었다. 하지만 만족감은 덜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HD800과 훌륭한 매칭을 보이는 헤드폰 앰프를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일 같았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헤드폰 시스템 중 내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리뷰를 위해 실제 착용한 Bowers Wilkins의 P9 시그너처>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30옴 이하의 임피던스를 가진 헤드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이어폰만 구동할 수 있던 플레이어에서 사용이 가능한 헤드폰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이상한 현상이라 여겼다. “이거
디테일한 표현들이 가능할까?”
예상은 적중했다. 밸런스는 온데간데 없고 좋은 점을 찾는 것
보다 부족한 부분을 찾는 것이 더 빨랐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들 헤드폰 시장을 이끄는 메이커들이 하나
같이 하이파이 스피커 메이커였다.
이때, 나는 혼란을 겪었다. 단순한
착각이었지만.. 당시만큼은 하이엔드 스피커를 제작하기 보다 헤드폰 제작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이 전무했던 것 뿐이며 그들이 믿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 가장 뛰어난 소리가 무엇인지 이미 길을 알고 있었고 시행착오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리뷰 할 Bowers Wilkins가 딱
그러했기 때문이다. Bowers Wilkins의 처녀작 P5는
AKG와 부분적으로 협업을 이루긴 했다지만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Bowers Wilkins 제품 같지 않았다. 믿기 힘들었던 것은 온–이어 방식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오버–이어 방식에 P7이 등장했다. 이때부터 Bowers
Wilkins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소리에 확실히 다가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20옴대 임피던스로 내 아이폰에서 원활히 구동이 되었고 고역의 광채가 아쉬웠지만 수 년간 잠시 집을 떠날 때 나에게
음악의 목마름을 달래준 고마운 녀석이기도 하다.
그리고 드디어 P9 시그너처가 등장했다.
P9 시그너처는 어찌 보면 P7에서
한 단계 더 점프한 헤드폰일지도 모른다. P9이 아니라 P9 시그너처라
명명되었으니 말이다. 이 제품은 Bowers Wilkins가
50년 동안 이룩해온 오디오 기술을 자부하는 의미가 담긴 모델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P9 시그너처는 무척 훌륭한 헤드폰으로
평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100만원
초반의 가격표가 매겨진 어떤 제품과 비교해도 우위를 점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지 15분만의 리스닝으로 말이다.
헤드폰은 귀와 맞닿아 음악을 듣는 제품이란 완벽한 이해
난 어려서부터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엔 이어폰이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었지만 말이다. 어려서부터 건강에 관심이 많으셨던 집안의 어른께서는 이어폰은 청력의
손상을 가져다 줄 수 있으니 절대 크게 듣지 말라는 조건으로 때마다 포터블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당시
아이와나 소니 제품을 좋아했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청력에 무리를 가하지 않는 볼륨으로 제한하는 AVLS를
항상 켜놓고 들었다.
그래서 항상 볼륨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나름대로 이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것이 이어폰을 내 귀에 타이트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 이어폰과 내 귀 사이를 꽉 메워줄 솜을 찾게 되었다.
재미난 것은 솜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 이후 조금이라도 모양이 다른 솜을 찾게 되면 하나씩 사다 바꿔 껴보기도 했다.
지금은 커널형 이어폰이 대세로 과거엔 귀와 밀착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드라이버만을
개선시키기에 급급했던 시절도 있었다.
P9 시그너처는 Bowers
Wilkins가 헤드폰과 인간의 귀 사이에서 작용되는 문제점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헤드폰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손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을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 컴포넌츠들은 이런 것들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것도 더 이상적인 음에 다가 서게 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P9 시그너처는 드라이버의 앵글을 15도 돌려놓았다. 비로서 귀와 완전한 밀착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차이는 음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도했다. 물론 이는 헤드폰 제작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하지만 밀폐형을 떠나 오픈형 헤드폰에서도 캐비닛의 어쿠스틱 챔버
디자인이 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하물며 밀폐형이라면 도저히 쉽게 구현해 내기 어려운 기술이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P9 시그너처가 새롭게 커스트마이즈드
된 드라이버만으로 이렇게 드라마틱한 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인간의 귀에 최적화를 이룬 디자인으로 귀와 수평을 이룰 수 있게 15도 앵글이 주어진 디자인>
이러한 디자인 변경만으로도 과거에 쉽게 느껴지지 않았던 초저음과 고역의 배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하모닉스가 풍부한 피아노의 배음은 청력이 민감하지 않은 이들도 조용한 곳에서 “어~? 잔향이 풍부한데?” 라고
인지할 수 있을만한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음질이 별도에 하이엔드 소스기기와 헤드폰
앰프 없이도 구현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나에게 잔잔한 쇼크가 되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문제점도 따른다. 앵글을 15도 뒤집으면 40mm 진동판의 드라이버가 움직일 때 배압이 달리
작용하는 문제다. 더 큰 문제는 P9 시그너처는 밀폐형
헤드폰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Bowers Wilkins가 보유한 최첨단 시뮬레이션
기술이 적용 되었다. 800 D3 시리즈를 개발할 때 이뤄진 시뮬레이션 장비를 활용한 것으로 이런 시뮬레이션
자료 등은 800 D3 시리즈 론칭 쇼에서 소개되어 목격한 이들도 많다.
이러한 정확한 계산과 복합소재들과 알루미늄을 결합시켜 최적화를 이루어 최고의 캐비닛 챔버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이엔드 헤드폰으로써 작은 음들까지 묘사하기 위한 디테일
P9 시그너처의 드라이버는 나이론 댐프드 콘은 여전히 사용된다. Bowers Wilkins는 이 소재가 헤드폰 드라이버 진동판으로써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나도 그렇다.
하지만 기술이란 무조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의 재료를 비싸게 구입해 손쉽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P9 시그너처에 적용된 드라이버는 40mm로 P7과 동일하지만 어쿠스틱 코팅이 되어있다. 파우더의 형태로 40mm 크기의 콘에 뿌려져 일종의 컴포지트 콘으로
탈바꿈 되었다. 여기에 P7보다 훨씬 커진 서라운드가 채용되었다. P9 시그너처를 위해 개발된 이 드라이버는 P7의 10Hz ~ 20kHz 주파수 대역보다 더욱 넓어진 2Hz ~ 30kHz 재생
주파수 대역 확장을 이뤄냈다. 더욱 커진 서라운드(엣지)는 더욱 커진 콘의 진폭에도 대응해질 수 있고 클레버 서스펜션 디자인과 결합돼 P7에 비해 훨씬 정교한 피스토닉이 가능해졌다.
<이 사진이 중요하다. Bowers Wilkins 로고와 결합되어 있는 저 회오리 디자인은 진동이 잘 전달되지 않는 짧은 케이블들이다. 이를 통해서 각각의 이어 컵은 헤어 밴드와 완전히 디커플드 되어 디스토션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P7과는 절대 비교가
불가능한 고품질의 초저음과 고음을 만끽할 수 있다.
여기서 개인적 의견을 더하자면 40mm 나이론 댐프드 콘 드라이버를
계속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22옴 디자인으로 일반적인 모바일 폰이나 DAP 출력에 완벽하게 대응된 디자인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디–커플드 헤드밴드의 기술도 돋보인다. 사실 헤드폰에서 출력되는 음압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이것이 공진
에너지로 변해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헤드폰이다. 귀에
밀착되어 작은 음도 크게 들리는 것으로 헤드폰을 귀에 착용하고 손톱으로 톡~ 톡~ 때려보면 이런 작은 충격이 귀에 확연하게 음으로 들린다.
문제는 기존 헤드폰의 밴드 시스템은 양쪽 이어 컵에서 발생하는 이 작은 디스토션 요소들이 밴드를 타고 옮겨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P9 시그너처의 경우 각각의 이어
컵과 이 둘을 잇는 헤어밴드를 완전히 디–커플드(끊어놓는
효과) 시켜 놓았다.
글로썬 도저히 설명이 안될 텐데 첨부한 사진을 자세히 보면, 개별적인
이어 컵에 Bowers Wilkins 로고가 새겨진 사이드 패널과 결합되는 헤어 밴드의 둥그런 부분
사이가 복합 소재로 제작된 백여 개 이상의 짧은 케이블들에 의해 사실상 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계산된
길이에 의해 마치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는 듯한 텐션까지 갖추고 있다.
별도의 설명을 누군가 해주지 않는다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가 되어있다.
또한 P7 대비 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고도 금속 헤어 밴드를
강화시켜 디스토션을 더욱 줄이고 있다.
여기에 스카브렌타의 최상급 사피아노 가죽까지 적용되어 있다. 사피아노
특유의 주름과 정말 멋진 브라운 컬러로 인해 P9 시그너처는 이제야 Bowers Wilkins가 자부할만한 그리고 어떤 경쟁에서도 앞서 나갈만한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다. 여기에 알칸타라가 적용된 캐리 케이스까지 제공된다. 비록 P7에 비해 2배가 훌쩍 넘는 가격으로 책정되긴 했어도 여전히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하이엔드 스피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배음 표현이 돋보이는 P9 시그너처
P9 시그너처는 정말 놀라운 재생음을 선보인다. 여기서 제한이 따르는데 하이엔드 소스기기나 헤드폰 앰프가 없는 조건에서다.
22옴으로 50mW만 입력 되어도 엄청난 출력을 뿜어낸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수백 만원대에 DAP가 아닌 아이폰6 플러스에서도 대단한 음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깊은
저역과 양감뿐 아니라 반응까지 상당히 정확하게 이뤄진다. 처음 P9 시그너처를
착용했을 때… 이렇게 쉽고 빠르게 좋은 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왜냐면 기존 헤드폰들은 최소한 포터블 형태의 헤드폰 앰프에서도 완전한 저역의 통제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P9 시그너처에선 단지 아이폰6 플러스만으로 가능했다.
<리뷰를 위해 여러 헤드폰들이 섭외가 되었다. Bowers Wilkins가 얼만큼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2년간 사용한 P7 헤드폰과 P7 와이어리스 까지 동원했다>
또한 배음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고역의 광채도 무척 뛰어나다. 밝고 싱그러운 표정을 짓게 만드는 음으로 스피디하지만 무척 부드럽게 귀에 감긴다. 특히 피아노 연주에서 배음은 무척 풍부하다. 난 단 한번도 아이폰을
통해 이런 배음을 경험한 바가 없었고 이것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하지만 피아노의 재생음을 듣고 기대할 수 있었던 현악에서의 배음은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그만큼 피아노 재생음에 있어서는 가격을 완전히 초월한 재생음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저녁에 조용한 곳에서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P9 시그너처는 헤드폰이다.
이 헤드폰은 정말 기가막힌 재생음을 들려준다. 1,000만원대로 소스기기와 헤드폰 앰프, 헤드폰을 구성한다고 해도 P9 시그너처를 완전히 압도할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P9 시그너처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스마트 폰에서 조차 하이엔드
오디오가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쁨이 있다.
P9 시그너처를 통해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은 지하철 역에서
수 많은 인파와 함께 걸으며 음악을 들을 때, 나 스스로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요즘처럼 맑은 날씨가 많았던 날 밤 하늘에 달빛을 보면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들으면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로 나를 감싸 앉을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이 헤드폰 앰프 없이 가능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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