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 구성에서 극한의 수준으로 올라서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시스템 구성에서 컴포넌트에 매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변화, 이를테면 케이블의 지오메트리 디자인에 따른 차이가 최종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에선 큰 변화를 가져온다.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지오메트리 디자인이나 실제 캐피스턴스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디자인이 재생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심선의 재료가 순은이냐 순동이냐 여기에 불순불이 얼마나 적느냐에 따라 음색이 바뀌는 현상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객관적으로 인슐레이터의 성능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어쨌든 시스템의 수준이 극한까지 올라서면 레코딩 당시 포함된 공기감마저 아주 작고 작은 음의 성분으로 녹음되어 있고 이런 작고 작은 음의 전압들이 살거나 희생되는 것에 최종적인 재생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풀 수 있겠지만 이걸 풀어내기 위한 작업에 투자할 사람도 없고 여기에 시간을 투자할 아주 뛰어난 과학자도 없는 것이 현실일 뿐이다.
최근 10년 이상 하이엔드 오디오 컴포넌트 기술은 발전이 없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하이파이 시장은 쇠퇴했고 그 배경엔 스마트 폰의 눈부신 발전과 소득 증가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졌다는 데 있다.
사실 하이파이 오디오 시장의 쇠락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하이파이 오디오를 위해 디자인된 소자들의 생산을 포기하는 메이커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 보고자 많은 메이커들이 다변화를 시도했고 그 속에는 전원부를 SMPS화 하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근본적인 틀을 바꿔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중 Ayre Acoustics의 찰스 한센만이 프리 앰프에서 가장 큰 손실이 일어난 볼륨을 감압 후 증폭 형태가 아닌 증폭률을 조절하는 방식의 하이엔드 프리 앰프를 완성해 큰 업적을 이뤄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17년 11월 어느 날 요절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하이엔드 프리 앰프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자리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어떻게 보면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막연하게 전원부를 분리하고 채널을 분리하는 방식과 회로의 완성도가 비약적으로 올라서는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전원부 분리나 증폭 회로의 분리가 큰 효과를 불러오고 있으나 이런 제품은 2억 전/후의 가격에 포진되어 있다.
오늘 리뷰 페이지를 장식할 비니 로시의 브라마 프리 앰프다. 이 회사는 현재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와 프리 앰프, 스테레오 파워 앰프를 개발했으며 모두 브라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들 제품 모두 디자인의 아이덴티티가 통합되어 멀리서 바라보아도 비니 로시 제품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고급스럽지만 독창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VU 미터가 결합되어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Finely bead-blasted 표면 처리 기술을 통해 독특한 질감과 실버 컬러를 연출하고 있다.
비니 로시의 브라마 프리 앰프에 강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제품 개발 전 철저한 벤치 마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테면 섀시 구조를 볼 수 있다. 비니 로시는 외부에서 나사 하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전체적인 쉐이프는 아주 완만한 라운드 곡선을 통해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지만 곳곳에 상당히 두꺼운 알루미늄 블록들을 가공하여 상당히 무게감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 중 하나가 아웃-트리거와 일체화 시킨 Bottom 섀시이다.
이 Bottom 섀시의 두께는 무려 18mm에 육박한다. 무척 두꺼운 섀시이며 미국의 메머드급 파워 앰프 메이커가 자사의 레퍼런스 파워 앰프에 사용한 Bottom 섀시와 동일한 스펙이다. 그러니까 댐핑이 필요한 모든 부품들이 집중되는 곳인만큼 더욱더 신경을 쓴 것이고 이를 디자인적으로 잘 나타냈으며 나머지 섀시들과 결합도 잘 이뤄졌다.
사실 브라마 프리 앰프의 디자인은 브라마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와 상당부분 공유된다. 브라마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는 초기 출시가가 $40,000에 육박할 정도로 고가의 제품인데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로써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의 대용량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탑재되어 있다. 그 용량은 1.750VA로 대출력 파워 앰프에 탑재되는 용량이다.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이지만 근본적인 프리 앰프 회로는 동일하며 단지 아웃풋 스테이지에 Mosfet을 사용해 8옴에서 200와츠의 출력을, 4옴에서 350와츠의 출력을 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라인업에 프리 앰프를 파생시키면서 이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그대로 사용한다. 프리 앰프로써 1,750VA라는 용량은 본적도 없으며 들어본 적도 없다. Over and Over and Over Specification이다. 비니 로시는 프리 앰프를 위한 별도의 트랜스포머를 제작하는 것 보다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품질의 레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더 특이한 점은 브라마 프리 앰프는 300B 진공관을 채널당 하나씩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프리 앰프 증폭단에 왜 출력관을 적용한 것일까? 요즘 이야기 하는 관종? 튀어야 산다는 것일까? 뭐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필요했던 것은 1,750VA의 토로이달 트랜스포머와 300B가 어떻게 깊이 430mm에 높이 145mm 크기의 섀시에 수납할 수 있었을까였다. 레이-아웃이라는 것은 공간이 허락한다고 그냥 구겨 넣고 끝나는 게 아니다. 특히 아날로그 증폭이 이뤄지는 하이엔드 오디오 컴포넌트에서 레이-아웃은 정말 중요하다.
또한 300B는 직접 가열 방식의 3극관이라는 것이다. 열도 굉장한데 상판에 디자인의 완성도를 고집하기 위해서인지 흔한 방열구멍도 없다. 물론 프리 앰프에 300B 진공관을 접목하면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과는 다른 디자인으로 적용했을 수 있다. 실제 과장을 조금 보태서 과거 백열 전구가 발산하는 열을 상상하면 정상적인 동작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동작을 한다 하더라도 주변의 부품들, 무엇보다 저항의 경우 고열에 영향을 받으면 저항 값이 줄어드는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에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하이브리드 증폭 회로이다.
브라마 프리 앰프는 300B 진공관을 사용한 프리 앰프로 보이지만 300B 진공관만을 사용한 증폭 회로는 아니다. 내부에 솔리드 스테이트 회로와 함께 구성된 증폭 회로를 사용하고 있다. 브라마 프리 앰프의 전면을 보면 서클 형태의 2개의 창이 존재하는데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엔 선택된 입력부 표시 미터와 소리의 좌/우 레벨 미터, 증폭 회로의 게인 미터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트라이오드라는 미터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통해 증폭 회로의 레벨을 조절할 수 있다. 정확하게 Ratio Level이다.
무슨 이야기지?
트라이오드는 0%, 25%, 50%, 75%, 100%로 총 5가지 비니 로시가 설정한 프리셋 값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0%와 100%를 선택할 경우 극단적인 회로 동작이 일어나는데 0%일 경우 300B 진공관 회로를 완전히 꺼버리고 100% 솔리드 스테이트 증폭 모드로 동작하며 100%를 선택할 경우 솔리드 스테이트 회로를 완전히 꺼버리고 온전히 300B 진공관 회로를 통해 증폭이 일어난다.
여태까지 진공관과 솔리드 스테이트 회로가 함께 동작하는 프리 앰프와 개별 회로를 독립적으로 탑재해 선택의 몫을 오디오파일에게 부여한 제품은 있었지만 현재 기억엔 이 비율을 조절할 수 있는 프리 앰프는 비니 로시가 최초인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Gain까지 +/- 레벨안에서 5단계나 조절할 수 있어 비니 로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색의 특징이나 시스템을 드라이브 할 수 있는 특징의 조합의 수는 상당히 많다. 이 안에서 변경 가능한 모든 조합의 결과는 결국 상대적일 수 밖에 없고 가장 이상적인 특성을 들려주는 값에 고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수입원에서 들었을 땐 + 레벨의 게인에서 트라이오드의 비율을 25%로 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수입사분의 의견이 있었는데 내 리스닝 룸에서는 Gain은 0dB에서 트라이오드 비율은 50%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무엇보다 트라이오드 레벨(비율)은 Gain 값에 따라 그 특성이 크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매칭 가능한 파워 앰프의 레벨이 현행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연결해보지 않았지만 입력 감도가 상당히 높은 소출력 진공관 앰프까지 커버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 브라마 프리 앰프가 내 리스닝 룸에 들어왔을 때 가장 도도라진 표현력은 보컬에 있었는데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봄을 연상시키는 온화한 음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중역의 표현력이 확실히 풍부해짐에 따라 보컬이 좀 더 강조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걸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300B 진공관의 장점과 더불어 솔리드 스테이트 프리 앰프의 S/N이 곁들어진 묘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트라이오드 값을 100%까지 올려 솔리드 스테이트의 증폭 회로를 끄게 되었을 땐 밀도가 증가하다 못해 아주 탱탱한 소리결을 가지게 되었으며 개인적으로 일종의 커브 값으로 예상되는 바이어스의 형태가 안정화 되는데 조금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튼 시스템에 따라 프리 앰프가 시스템을 장악할 수 있게 프리 앰프가 낼 수 있는 특성을 사용자에게 가져다 주는 프리 앰프라는 것은 무척 신선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제어 기술은 아주 탐났던 리모컨을 통해 가능했는데 적외선 방식이 아닌 블루투스 방식으로 체결되어 굳이 방향성에 맞춰 조절하지 않아도 되며 볼륨은 기본이며 프리 앰프의 증폭 게인, 트라이오드 레벨, 셀렉터, 소리의 좌/우 레벨등 모두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다. 리모컨이지만 무려 2.4인치의 LCD창을 가지고 있다.
다만 2.4인치의 LCD와 블루투스로 항시 통신하는 만큼 일반적인 리모컨에 비해 전력 소모는 빠른 편이다. 하지만 충전 가능한 리모컨으로 USB-C 포트를 통해 언제나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다.
브라마 프리 앰프의 제품 무게는 36kg에 이른다. 프리 앰프로써는 대단히 무거운 무게인데 이는 대부분 1,750VA에 토로이달 트랜스포머와 육중한 섀시가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마지막까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왜 대출력 파워 앰프에서나 사용할 1,750VA에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사용했을까였다. 마지막까지도… 확실히 득이 될 수도 있지만 실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비니 로시에서 대체 불가한 품질과 더불어 18mm의 두께에 이르는 Bottom 섀시에 막강한 댐핑을 가해주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상당한 정성이 깃든 프리 앰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수입원 – 체스오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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